Note
[영화] 저 개는 진짜인가요?, 블레이드러너 2049 본문
조이는 진짜인가?
복제는 진짜라고 할 수 있는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등장하는 시뮬라크르는 시늉, 모의와 같은 뜻을 가진 실재같은 모조품, 모방품을 말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모방품,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를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
레플리컨트 케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인지라 내심 복제인간도 진짜야, 라며 케이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는 감정을 느끼고 함께 시간을 향유하는 레플리컨트를 관객이 쉽게 응원할 수 없도록 다양한 장치를 설정해놓았다. 이를테면 레플리컨트의 유전자 서열은 모두 설계자가 있는 의도된 것이라던가,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것. 심지어 의도된 심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프로그래밍된 인간을 우리는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케이는 이러한 설정에 충실한 캐릭터다. 자신은 영혼이 없는 가짜라고 여기는 레플리컨트 케이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표정을 지을 때는 자신의 집에 설치한 홀로그램 조이와 대화할 때.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케이가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순간은 조이에게 이름을 불리는 순간일 뿐이다.
홀로그램 조이는 복제품, 시뮬라르크다. 만질 수 없고 케이가 바라는 말을 하는 프로그램인 조이를 실재한다고 보는 것은 케이를 진짜라고 명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별한 소년에겐 이름이 필요하다며 케이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도 조이이지만 영화 후반부 전광판에서 그 특별했던 이름이 다시 불릴 때 케이는 다시금 모조품에 불과한, 실재하지 않는 시뮬라크르로 정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담 조이는 가짜인가? 케이의 집에 살았던 조이와 케이가 쌓았던 시간들마저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르는 케이의 이야기를 아는 조이를 그저 프로그래밍된 가짜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과거의 기억은 없지만, 설계된 유전자 서열을 갖고 있지만, 감정을 느끼고 시간을 공유하는 케이를 가짜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같다.
저 개는 진짜인가요?
영화는 케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스텔린을 내세운다. 가짜로 둘러쌓인 진짜 스텔린과 진짜 세계에 살고 있는 가짜 케이.
당신은 진짜를 알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지만 더 매료되었던건 난 역시 널 알고 있었어, 넌 특별한 존재야! 라며 조이의 입을 빌어 자신을 위로했던 케이의 무표정이다. 내심 특별하고 싶었던 케이의 간절한 마음이 와닿았다.
인간도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특정한 유전자 서열에 따라 태어나고 호르몬 작용에 따라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는 설계자가 부모인가, 과학자인가 만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보면 영화 속 장치들은 모두 나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진짜인가? 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실재, 진짜이고자 하는 마음은 레플리컨트와 인간을 구분 짓는 논쟁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누구나 묻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 말이다.
그래서 케이처럼 우리는 종종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의하고자 한다. 당신에게 난 무슨 의미죠? 라고 묻는 데커드의 말에도 담겼듯 우린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실존이라 함은 때론 너무 어렵게 혹은 너무 쉽게 얻어질 수 있다. 수많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그저 단 한 명에게라도 서로가 진짜였다면 영혼이 있는 진짜일 테니까 우린 그토록 사랑을 갈구하는 것 아닐까.
영화는 실재는 속성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한다. 존재로 실재를 증명할 순 없으며 인간적인 행동만이 진짜를 정의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못했던 케이가 딸과 아버지를 만나게 함으로써 케이는 실존을 증명한다. 저 개는 진짜인가요? 라는 케이의 물음에 모르지. 쟤한테 물어봐. 라고 대답하는 데커드의 말이 생각났다.
만일 인간이 관계 속에서만 실존할 수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은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자율성과 능동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지 않던가? 관계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만 살아있음을 증명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실존은 스스로만이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행동에 좀더 책임감있게, 즐겁게 임하고 싶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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