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생각] 미쳐야 미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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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쯤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그의 독서가 슬며시 미워진다. 누구를 위한 독서요, 무엇을 위한 독서였던가? 제 어미의 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제 누이마저 영양실조로 떠나 보내는 그런 독서를 무엇에다 쓴단 말이냐?
* 함부로 몸을 굴리고,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청춘을 탕진한다. 무엇이 좀 잘된다 싶으면 너나없이 물밀 듯 우루루 몰려갔다가, 아닌듯 싶으면 썰물 지듯 빠져나간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하고 칭찬만 원한다. 그 뜻은 물러터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킴은 확고하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루려 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꿈꾼다. 여기에서 무슨 성취를 기약하겠는가? 옛사람들은 김득신의 노둔함을 자주 화제에 올렸지만, 그 속에는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외경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세상을 놀래키는 천재는 많다. 하지만 기웃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성실한 둔재는 찾아볼 수 없다.
* 그 옛날 더벅머리 소년에게 던져준, 오로지 부지런하면 된다던 스승의 따스한 가르침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 옛사람들의 편지글을 볼 때마다, 과연 물질 환경의 ㅅ발전이 삶의 질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물질의 삶은 궁핍했으되, 정신의 삶은 보석처럼 빛났던 선인들의 자취를 그들이 남긴 짧은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 위순이란 말 그대로 순리대로 내맡기라는 것이다. 몸에 고요를 깃들이고, 마음에 허공을 담으며, 분별지로 세상을 가르지 않고, 자연의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마음속에 잡된 생각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마음을 단련한다 함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공부를 닦는 것을 말한다. 텅 비고 고요하니 분노가 일어날 일이 없고, 앞서려는 다툼도 없고, 아무리 써도 축나지 않는다. 달이 허공에 떠서 천지 사방을 밝히듯, 맑은 물이 바닥을 훤히 비추듯 일렁이는 생각을 걷어내고 걷어내면 고요만 남는다.
* 깨닫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잔득 때가 낀 거울과 같다. 사물을 비추지 못하는 것은 이미 거울이 아니다. 하지만 물로 씻어내고 닦아내면 거울은 다시 사물을 비춘다. 마음의 먼지도 이같이 털어낼 일이다. 세상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온갖 망념들은 바로 거울의 때다. 환한 거울 앞에서는 모든 사물이 제 모습들 들어낸다. 감출 수가 없다. 거울에는 거울의 아我가 없다. 지나가는 사물이, 세계가 있을 뿐이다. 거울은 나이면서 나가 아니고 세계가 아니면서 세계다. 내가 없으므로 세계를 받을 수 가 있고, 그 세계는 바로 나이기도 한 것이다. 표면이 흐려지면 거울은 사물 비추기를 거부하고 제 자신을 고집하게 된다. 제 자신을 고집할 때 거울은 이미 거울이 아니다.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거울은 금세 더러워진다. 마음 밭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차분히 가라앉혀 침묵을 깃들ㅇ녀햐 한다. 생각을 걷어내야 한다. 그 끝에 깨달음이 있다. 이 깨달음은 유불도 삼교의 가르침을 넘어선다. 나와 우주 사이, 나와 세계 사이의 간극이 없어진다.
- 전반적으로 왜 나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은 걸까? 아무래도 내가 아직 젊음의 호기로움이 있어서 그럴까? 이러한 옛 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때때로 그래도 지금이 훨씬 성숙한 사회지 않을까? 이런 자세는 동의하기 어려워 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이를테면 노비 막돌이를 추모하는 듯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노궁이야기라던가) 좀더 나이가 든 이후에 다시 읽었을 때 내 생각이 바뀌어 있다면 신기할 듯싶다. 결국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라는 것이 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학창시절과 달리 새로운 것은 비판점을 좀더 많이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내가 가진 가치관이 사실 옛부터 내려오고 있구나 싶은 것. 문화와 민족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에 애착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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