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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뷰티(1999) : 이상과 현실 사이

참잘했을까요? 2021. 8. 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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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 있음.

 

충족될 수 없는 욕망과 결핍

 자기계발서들은 욕망을 동기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과학서적들은 그저 호르몬들(이를테면, 도파민)의 작용이라 한다. 결핍이라는 부정적 단어 대신 성장에 대한 욕구로 치환하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거꾸로 이 영화는 낡아버린 퇴색된 욕망을 결핍이자 집착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에는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가족이 나온다. 딸의 친구를 탐하는 아빠, 성공을 외치지만 이룰 수 없는 엄마, 특별해지고 싶은 딸. 이외에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리키의 아빠와 다른 이의 관심에 중독된 안젤라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언뜻 평범해보이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은 비틀린 채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인물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점점더 강조하지만 진행과정이 너무도 잔잔하고 평온한 우리 일상과 같이 흘러가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선사했다. 사춘기 소년처럼 책임을 버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아빠에게서,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엄마에게서, 누구보다 특별해지고 싶어하며 가시를 세우는 딸에게서 언뜻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부끄러운 욕망들을 은은하게 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같아서 자꾸만 영화를 끄고 싶었다.

 결핍은 상대적인 것일까, 절대적인 것일까? 나의 욕망은 나를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동력이 되지만, 때때로 나의 욕망이 끝없는 구멍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영원히 충족되기 어려울 것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결국 모든 결핍의 원인은 '나'라는 것같아서, 스스로가 미워진다. 

 

부유하는 봉투의 아름다움

 영화 속 리키는 옆집에 이사온 남학생으로 어딘가 이상하다. 마약을 판매하고, 캠코더로 좋아하는 여자아이(극 중 딸)를 촬영하고, 죽은 비둘기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극 중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을 명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리키는 죽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다. 살아 있지만 누구보다도 죽은 상태와 다름 없는 레스터 가족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인물. 그래서 인지 레스터 또한 파멸에 가까워질 수록 누구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욕망을 누구보다도 인정하며 삶을 사랑하는 리키와 달리 그의 아버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그는 항상 분노에 차있으며, 가족을 억압하고, 종내에는 살인에 이른다. 영화 초반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 불행한 레스터네 가족을 보며 서글퍼졌는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나의 욕망을 끝없는 구멍이라고 치부하며 고개 돌리기보다 좀더, 깊숙히 똑바로 바라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욕망이, 꿈이 있는데 그걸 부정하는 것은 진짜 내 꿈을 욕망으로, 결핍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사실 언제나 알고 있었으나), 가슴 깊이 느껴야할 것은 마지막 레스터의 독백처럼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친다는 점이다. 살다보면 화가 나는 일도 많지만 분노를 품기엔 아직 세상에 아름다움이 많다. 나는 종종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가 많았던 것같다. 자신을 탓하면서 우습게도 타인에게 상처입히곤 또 자신을 탓하는 굴레에 빠져 있다. 오만한 자기 기만적 행위를 끊어내기 위해서 숱한 책을 읽었지만 내가 만났던 빛나는 사람은 마치 그렇게 태어났다는 듯 너무도 손쉽게 예쁜 마음들을 가졌었다. 그런 눈부신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볼 때면, 나는 정신없이 그 사람에게 매료되곤 한다.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느끼고 감사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눈이 부신지 모른다. 

 레스터와 그의 아내, 딸, 친구 이 모든 인물들의 욕망이 어렴풋하게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바라기도 하는 내 부끄러운 마음일 것이다. 언젠간 이런 번민도 극복할 수 있을까? 마음이 많이 괴롭다. 이런 마음을 기록해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보는 일은 너무 괴로울 것같은데. 아무튼 간에 영화를 너무 많이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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