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독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본문
소크라테스는 1. 신을 부정했다. 2. 아테네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 는 이유로 고발했다. 이 책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어찌되었든 2000년이 넘게 지난 2021년에 와서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이 과두정치에 불만을 갖는 모습은 이상하지 않게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고발 당한 죄목을 이해할 수 없지만 또 얼핏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모습인 것같지 않다. 언어를 이용해서 대중을 설득하는 수사학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현실에서 매일 벌어지는 아고라 직접 토론들에 지쳐 있던 나는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70세의 고령에도 독배를 마시는 것을 선택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철학을 굉장히 좋아한다. 결국 나 자신을 알라는 말은 내가 아무것도 모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필멸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하지만 우린 모두 자족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 자기충만한 삶을 살고자 한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완전하고자 하나, 절대 완전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불행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름을, 그러니까 분명 세상에서 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 필멸자임을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
친구가 죽는 것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우정과 정의에 관한 가치를 가진 크리톤이 정의와 부정의의 관점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설득당하는 장면은 인상 깊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무지에 대하여 설득하고 다녔지만, 아테네의 법률을 중요시했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친구 크리톤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이 든 성배를 마신다. 신념이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의연하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을 큰 덕목으로 꼽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겸손의 의미가 자신을 낮추는 것, 혹은 누군가를 높이는 것과 같은 상대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보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좋겠다. 겸손의 미덕을 부정하고 자신을 뽐내는 것도 좋지만 어쩔 수 없이 타자와 얽혀살 수 밖에 없는 공동체적 동물임을 요즈음은 많이들 잊고 사는 것같다.
이러니 저러니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자아가 비대한 사람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원칙대로 살고자 했으나, 언제나 그게 너무 어려운 나는 스스로에게 누구나 다 모르는 거야, 라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빗대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침잠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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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심미아스, 모든 사물을 교환할 수 있는 참된 화폐가 하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지혜야. 이러한 지혜와 바꿀 때만,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가져야만 용기든, 절제든, 정의든, 무엇이든지 참으로 사고팔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모든 참된 덕은 공포나 쾌락이나 이 밖에 이와 비슷한 좋은 일 또는 나쁜 일이 따르든 따르지 않든 간에, 지혜와 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여러 좋은 것으로 되어 있는 덕도 지혜와 분리되어 서로 맞바꾸게 되는 경우에는 덕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또한 여기에는 어떠한 자유도 건강도 진리도 없어. 그러나 참된 교환에서 이러한 모든 것은 정화되지. 그리고 절제, 정의, 용기, 지혜 자체가 이러한 것들을 정화하는 거야. 신비 의식의 창시자들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을 한 것 같아. -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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