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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곁에 있어줘요, 미드<성난사람들 BEEF> 후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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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곁에 있어줘요, 미드<성난사람들 BEEF> 후기

참잘했을까요? 2023. 5.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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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출처 : 구글 영화 소개

간만에 흥미진진한 미드를 보았다. 자극적인 포스터처럼 말 그대로 드라마는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 화가 난 에이미(앨리 웡)와 대니(스티븐연)의 분노로 드라마는 시작되는데, 마트에서의 주차 시비에서 시작된 이들의 화는 멈출줄 모르고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분을 쏟아내듯이.

보복운전으로 시작한 복수는 상대의 집까지 찾아내며 꼬리를 문다. <성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처럼 어떤 무서운 스릴러가 벌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복수들은 소소해서 오히려 귀엽다. 화장실에 오줌을 뿌리고 도망간다던가, 차 밖에 낙서를 한다던가 따위로 말이다.

 

분노를 분노로 갚는 악순환은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지만 화를 내지 않는 두 인물들의 하루는 무겁고 지겹고 지친다. 즐겁지 않고 무겁고 지치고 어딘지 모르게 힘든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가는 둘의 모습은 보는 이러 하여금 왜 그렇게도 서로에게 화를 내는지 알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이미와 대니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달려갈 때 가장 즐겁고 생기있는 표정을 보여 준다.

부유한 상류층의 삶을 사는 에이미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으며 남편은 회사 직원에게 남모를 끌림을 느끼고 있어 초조하게 회사를 매각하고 싶어한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대니는 동생을 돌보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싶어 대출금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한다. 꾸역꾸역 햄버거를 집어 넣곤 가슴을 치는 대니의 숨막힘은 햄버거로 드러난다.

 

꼭 뭐가 있다니까!

분노는 역시 화를 부르는 법.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지? 싶을 만큼 사건은 더이상 수습불가 그 자체다. 작고 소심했던 복수는 나날이 커졌고 나비효과마냥 많은 일들을 꼬아버린다. 대니와 에이미의 분노는 서로를 향하다 결국 갈 길을 잃고 황무지로 굴러 떨어지는 자동차로 막을 내린다.

 

출처 : 넷플릭스

 

누군가를 조건없이 사랑하는게 가능한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에이미의 대사다. 누구보다 조건없이 사랑받고 싶었던 에이미.

대니와 에이미는 닮았다. 지독하게 외롭고 비어 있는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다. 그들은 과거에 발목잡혀 나아가지 못한다.

나와 같았으면 좋겠어, 못된 짓을 했지만 그래도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어쩌면 이기적이고도 본능과도 같은 이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뒤돌아 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흘끗흘끗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고 괴로운 마음 또한.

 

몇 세대에 걸친 트라우마가 축적된 기분이야

 

에이미의 말처럼 대니와 에이미는 마치 날 때부터 화사하게 태어난 듯한 조지와 폴과는 다르다. 극 중 나오는 대니의 동생 폴과 에이미의 남편 조지는 대니와 에이미보다 약해보이지만 솔직함을 가진 강한 사람들이다. 비록 사랑받지 못할 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털어놓는다.

대니와 에이미는 폴과 조지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랑할 수록, 사랑받고 싶을 수록, 점점더 그 마음 앞에 웅크리고 숨던 대니와 에이미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또 그걸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잘못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 어느 누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싶은 이 앞에서 벌거벗은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을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선 제발 사랑해줘, 떠나지 말아줘, 나 조차도 이런 나를 사랑할 수가 없어, 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듯한 에이미와 대니의 간절한 표정은 마음이 아렸다.

 

 

이러고 나니 진짜 아무것도 없네. 진작 이럴걸.

그래도 한번은 했잖아.

 

 

아이를 보호하고자 뛰는 대니는, 가장 치명적일 복수는 참고 마는 에이미는, 죄를 저질렀으나 선량한 사람들이다. 극 후반부에 이르러 정말 받고 싶었던 사랑을 잃더라도 솔직해지는, 서로 앞에 마주 앉아 누구보다 진솔해지는 둘의 모습이 안타깝고 아름다웠다.

 

 

 

대니와 에이미는 분명 폴과 조지의 입장에서 악연일지도 모른다. 이기적이고 비틀린 사랑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조지는 어두운 터널로 뛰어들어와 에이미를 찾는다. 아마 극 중에 나오진 않았지만 언젠가 폴도 대니를 용서할 것이다. 어쩌면 대니와 에이미가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 <빛의 형상> 을 융의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두움을 의식하면서 온다'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감독은 나의 어두움에 면죄부를 주자는게 아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직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대니와 에이미는 자신의 그림자를 서로에게서 보고 그토록 분노에 시달려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그들이 잘못 들어선 길은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먼 길을 돌고 돌아 둘은 화해와 용서를 서로에게 구하며 막을 내린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우리가 처음 말을 배우면서 알게 되는 말들이다. 가장 단순하고도 강렬한 이 마음들 앞에 언제나 솔직하고 대담하게 마주하며 살아야지. 잘못 들어선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겠다. 마음이 포개어질 수 없었던건 어쩌면 내가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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