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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연잎핫도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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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연잎핫도그

참잘했을까요? 2020. 2. 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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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잘 해내야할 것같은 서울 생활에 지칠 때는 꼭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방문하곤 했다. 대청마루에 누워서 혹은 사랑방에 누워 밥을 먹고, 몸을 청결히 하고, 그 날의 간단한 할 일만 마치면 되었던 하루하루가 필요했다. 서울에서는 내일을 넘어서 일주일, 이주일, 내년, 내후년의 일까지 계획해야 마음이 편했고, 또 운이 좋았던 건지 혹은 나빴던 건지 나는 계획한 일들을 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계획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미루는 일상은 당연했던 서울에서 나는 서서히 지쳐 갔던 셈이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들이 빼곡히 서있고, 언제나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무엇이든 크게 변해버릴 것같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 품이 좋았던 것같기도 하다. 서울의 어른들은 모두 무언가를 요구했지만 그곳에선 그렇지 않았다. 잘 먹기만 해도, 잘 웃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손주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조용한 근교에 가도 내 마음이 전과 같지 않았나 보다. 양평에 가면 그 때의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만 같았는데 아니어서 슬펐다. 앞으로의 나의 터전을 구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인 요즘 자꾸만 할머니 댁이 떠올랐는데 그곳이 시골이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계셔서 좋았던 것을 시간이 지날 수록 깨닫는다. 터전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구나.

어쨌든 양평 두물머리는 예뻤다. 오리들이 동동 떠다니는 잔잔한 물가는 앉아 있고 싶었지만 너무 추운 날씨였고 앉을 데도 없어 근처의 가게에 들어 갔다. 유명한 집인지 줄이 무척 길었는데 연잎을 넣은 핫도그라 했다.
가격은 매운맛, 순한맛 각각 3000원. 양평 에일은 5000원. 음료수는 2000원이었다. 앉아서 먹을 곳은 없었지만 커다란 난로가 실내를 따뜻하게 해주고 있어 괜찮았다. 순한맛과 매운맛을 각각 하나씩 시켰는데 소스가 똑같은 맛이 나서 조금 당황했다. 그런데 먹다 보니 핫도그 안의 소시지가 조금 달랐다. 매운맛이라고 해서 강한 매운 맛은 아니었고 순한맛에 비하면 매콤하다 정도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연잎의 맛은 잘 못느꼈지만 빵이 두툼하고 커다란 소시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먹어볼 만한 핫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핫도그에 빠져 하루에 핫도그 하나씩 먹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두툼한 핫도그와 얇은 핫도그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연핫도그는 연잎이 들어갔다는 매력보다는 두툼한 핫도그의 매력을 갖춘 핫도그 같다.
이걸 하나 먹고 나니 끼니가 해결되어서 다른 식당에 가고 싶지 않아졌다. 문득 양평 식당들의 입장에선 좀 손해겠다는 또 쓸데없는 공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예뻐서 양평에 터를 잡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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