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생각/독서] 양귀자 - 모순, 결핍이 삶을 두텁게 하는가? 본문
1.
선물받은 책을 정말 오랜만에 펼쳤다. 첫 출간일이 90년대인 만큼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지만, 이를테면 25살에 결혼을 해야 한다던가,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혀 내려갔다.
2. 결핍
결핍이란 무엇일까?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혹은 다 써서 없어짐을 말한다. 안진진에게 모자랐던 것은 가정의 안식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그런 의미에서 안진진의 결핍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렇다면 이모의 결핍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모의 결핍은 무엇인가? 자유? 열정?
이런 대비되는 이모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안진진이 정말 견딜 수 없게 결핍된 삶이었는가?에 대해 의문이 남았다. 괜한 심보로 그건 아니다! 라고 어깃장을 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날 결혼을 한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삶이 대비되어 자꾸만 대체 어떤 것이 결핍이라고 느끼는 것인지, 의문이 남았다.
3. 비교
내가 모자란 상태임을 인지하려면 우선 완성된 상태를 알아야할 것이다. 무엇이 완성된 상태인가. 가장 단순한 예시로는 숫자로 표현되는 돈일 수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예시로는 정서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어떤 것이 완성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평균적인 상태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성된 상태라고 느낄 것이다. 이 평균적인 상태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고 또한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이 모순적이지만 말이다. <모순>을 읽으며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가 너무 양극단의 상황에 놓인 인물이라서가 아닐까.
4. 인생
결핍이 인생을 두텁게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린 미완의 상태를 극복하고자 목표를 설정하고 고군분투한다. 문제는 모든 생은 미완이라는 점이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언젠가 죽고 마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니까.
미완의 삶에서 모든 인간의 결핍은 자연스러울 텐데, 어머니와 이모는 서로에게서 발견하였고 이것이 불행을 초래한 것이 아니었을까? 안진진의 어머니가 늘 생기가 넘치면서도 자식의 일에서는 울곤 했듯이 말이다.
안진진의 선택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김장우와 나영규로 대표되는 단 두 가지 선택지만을 놓고 고민하였기 때문이다. 생의 열정을 다 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선택지가 단 두 가지 뿐이라니. 그 마저도 어머니와 이모로 대표되는 것으로. 아무렴 90년대 작품이라곤 하지만 생의 선택지가 이미 경험해본 것에서 한정되어 버리고만 것이 못내 아쉽다.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시간은 단 두 가지의 생으로 함축될 수 없다. 작가의 의도상 당연한 한계 설정이겠으나, 소설을 관통하는 결핍이 인생을 두텁게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에는 결핍이 존재하므로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완성된 상태를 고민한다면,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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