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생각/독서] 새의 선물 - 은희경 본문
1. 60년 대의 이야기
어쩌다보니 얼마전 읽었던 소설 ‘모순’과 비슷한 배경의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두 가지 모두 고르지 않았을 것같은 분위기의 소설이다.
소설은 60-70년 대를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30대가 된 주인공이 과거의 어린 시절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액자식 구성이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시니컬한 아이의 시점에서 아주 건조하게 이야기를 풀어 낸다. 신파 또한 좋아하지 않으나, 이렇게 세상을 다 통달한 듯한 비관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왜 연속으로 이런 책이야!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 책 자체는 매우 추천할 만하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2. 여성과 시대상
으레 6-70년대 소설이 그러하듯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나는 듯한 음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어느 것에도 벗어날 수 없는 농촌 가족 중심 사회 속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시대의 비극을 안고 살아 가지만 다수의 여성 인물들을 내세워 이러한 감상을 더욱 강화한다.
특히 이러한 점이 가장 부각되는 것은 광진테라 아주머니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 어떤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은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살아본적 없었던 60년대를 생각나게 한다. 이 책인 95년 서른여덟이된 주인공의 시점에서 69년을 바라보는데, 사실 90년 대생인 나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어릴 적 어른들에게 주워 들었던 이야기가 전부다.
그럼에도 이 시절 이야기가 그리 낯설이 않은 것을 보면, 문화와 정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힘이 참 세다. 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화한다고 해도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풍경이 있는 셈이다.
요즘 태어나는 20년대생에게는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느껴질까? 문득 궁금해졌다.
3. 사랑은 배신으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는 나를 예뻐함에 분명하지만,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이모 대신 나를 보낼거라는 화자의 말에 순간 눈물이 날 것같았다. 화자가 그토록 무미건조한 이유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다.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나를 낳고 자살을 한다는 장치는 너무나 비극적이다. 영화 <푸줏간 소년>을 보았을 때 느꼈던 참담함과 비슷했다.
소설 <모순>과는 대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어디서 그리 힘이 나는지 모를 소설 <모순> 속 어머니와 다르다. 그러니까 굳이 이 소설 속에서 비슷한 인물을 찾자면 장군이 엄마는 홀로 장군이를 키우며 흔히들 말하듯 ‘억척스러움’이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주인공의 비극 앞에선 이 ‘억척스러움‘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사실 그 시절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은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퍽퍽한 삶에서 어떻게든 길러내고자 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인공에게 사랑은 배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셈이겠지. 아, 나는 사랑의 비극이 싫다. 한없이 주고 싶은 것이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받고 싶은, 그 처절한 외로움으로부터 피어나는 사랑의 어두운 속성이 매우매우 싫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 속 장치들은 늘 모래를 씹는 것같은 답답함이 든다.
4.
예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온갖 후회스러운 죄악을 저지르고 회개하고 나아가는 주인공을 읽은 적이 있다. 지독한 사대주의자 같은 발언이지만, 서양 세계 문학 속 주인공은 종종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듯하다. 기독교 문화권의 특징인가?
인간 생의 어둡고 축축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것도 좋지만 어찌 되었든 생의 의미는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역사의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연의 장난에서 덧없이 죽어가는게 생일지라도 나는 그럼에도 나아간다는 기독교 문화권의 이야기가 좋다.
어차피 무의미한 생에 사랑은 공허하다면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믿고 살아가는 편이 더 의욕이 나지 않겠는가.
'#다행복하자고하는거지 > 독서&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드워스 챈슬러 <금리의 역습> (0) | 2024.11.29 |
---|---|
사이토 다카시 <혼자 있는 시간의 힘> (0) | 2024.11.29 |
[생각/독서] 양귀자 - 모순, 결핍이 삶을 두텁게 하는가? (0) | 2024.10.02 |
[독서] 아이가 없는 집 / 알렉스 안도릴 (0) | 2024.09.01 |
[독서] 귀신들의 땅 - 천쓰홍 (0) | 202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