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독서] 말리의 일곱개의 달 - 셰한 카루나틸라카 본문
1.
간만에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났다. 2022년 부커상 수상작인 말리의 일곱개의 달은 스리랑카 소설로 어쩌면 조금 낯선 타국의 소설이다. 책 속의 많은 단어들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긴 식민지배 역사의 탓인지 익숙한 서구 문화권의 풍경과 우리 역사와 닮은 꼴의 내용들이 거부감을 일으키진 않는다. 오히려 어라, 비슷한 면모들이 왜이리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
부끄럽게도 스리랑카가 인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끝없는 내전 또한. 한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다양한 것으로 서로를 나누어 물어뜯어 대는데, 북인도의 아리아계 민족과 관련 있는 싱할라족과 남인도계와 관련있는 타밀족은 외형적으로도 구분하기 쉬운데다 지배의 역사마저 달라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3.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성애자인 주인공 말리는 개인적 사생활까지 참 엉망진창이다. 소설 내내 말리의 삶은 무엇이 진실된건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랑을 생각하면서도 끝없이 다른 육체를 탐하고, 금세 떠나버린다. 뭔가 각자의 옳음을 위하여 서로를 학살하는 군대들처럼 말이다. 죽이고, 떠나고, 사랑하고, 욕망하고.
장장 5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휙휙 넘어가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사실 애초에 초장에는 말리가 여자라고 생각했을 만큼 편협한 시각을 가졌기에, 내내 말리의 감정과 생각들을 따라가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흡입력은 엄청나서 대체 그래서 넌 어떻게 죽은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푹 빠져 들었다.
4.
삶은 참 별 것아니다. 살고 죽는 것은 어쩌면 단 한 순간, 앞니가 톡 빠져 버리듯, 톡, 하고 떨어져 나간다. 늘 죽음이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고대 그리스 격언처럼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이번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도박꾼 말리의 말처럼 생 속에서 우린 수많은 도박같은 확률 게임에 놓이게 되는데, 자유의지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죽음 앞에 이토록 유약하고, 확률 앞에 이토록 무력한 것이 인간인데 말이다.
5.
동양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의식은 아마 윤회 사상일 것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나는 이 때문에 모든 것은 공허하면서 동시에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고 기쁨을 찾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표범이 전구를 발명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도 비슷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간만에 동양의 소설을 읽으니 참 좋았다. 서구 문명의 지배를 오랜 기간 받았더라도 문화 속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이란 이토록 신기할 따름이다. 동남아시아의 소설도 이래저래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 근데 영국에서 상을 줬고 이 때문에 나에게 까지 읽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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